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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가 되자 - 수필가가 되는 습관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1. 06:59

-메모 습관과 모으는 습관의 사색화

어릴 때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의 셋째 딸이던 필자는 학교 도서실의 책을 마음껏 읽었다. 새로 구입하는 책이면 반드시 읽으며 독후감 형식의 짧은 글을 써 보았다. 소쿠리 항구가 바라보이는 이층 방에서 가끔 듣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이유 없는 기다림이나 나무 끝에서 이는 바람 한 자락에도 그리움을 키워 왔다. 보이는 아침 바다와 저녁 바다의 아름다움을 매일 같이 바라보며 공부하던 틈틈이 일기를 써 왔다. 그 날의 하루를 재구성하고, 나의 삶과 나의 정신을 점검하며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력을 가지기도 하였다. 띄울 곳 없는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매일같이 일기장에서 편지 같은 글을 쓰면서 포근한 외로움을 즐기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한다면 필자는 글감의 부족으로, 혹은 체험적 세상 읽기와 세상 보기에는 적합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게 9남매의 많은 형제 가운데 나는 아버님의 기대 속에서 신문 읽기에 취미를 가졌다. 때문에 학교 교장실로 배달되던 그 많던(?) 갖가지 신문을 읽으며 일찍이 신문 사설과 정치 사회면의 가십란을 좋아하였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남달리 사회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가져온 환경 탓에도 있는 듯하다.

수필은 물론이지만 글쓰기의 시작은 동기가 있어야 된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그 공간의 절절한 느낌이나 감격, 혹은 그 애틋한 사연 없이 우리는 하나의 픽션을 만들어 가기에는 이미 열정이 식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로 다가오며 여러 가지로 자신을 해체해야 하는 우리들이기에 한 순간의 감격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글의 실마리는 풀리는 것이다.

수년 전에 친구의 전화 소개로 만나 본 사람은 예상했던 대로의 예의바름과 차가운, 그러나 적당한 당당함을 가지고 내 앞에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생각하고, 전화로써 또 한 사람을 천거해 주면서 나는 내 일에 바쁜 나날을 보내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호텔의 로비에서 스치듯 만나 목례를 남기곤 나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날 또 스치듯 만난 사람은 명함을 한 장 달라고 하며 내 앞으로 왔고 나는 인사 답례의 명함을 한 장 주고는 한참 동안 그 사람에 대하여 잊고 있었다. 가끔 만나던 후배가 그 사람의 얘기를 했지만 나는 웃으며 옛날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바쁜 일상에 빠져가며 살았다. 후배와 어울리던 시간에 특이한 개성을 가진 그 사람과 어울리며 우리는 훨씬 더 인간적인 면을 느끼었다. 그러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그것 이외에는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일상적인 범례를 넘어서지 못했다.

부탁했던 일 때문에 사무적으로 만나 지극히 짧은 시간 후에 헤어지면서 호텔 입구의 계단 쪽으로 나의 시선이 머물 때 그도 가다가 말고 뒤돌아보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는 감격과 미진함의 감정들이 몸을 흔들어 왔다. 그리고 가끔 그리움과 같은 여운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다.

자주 만나면서 생활과 현재를 보고 느끼고 들으면서 새로운 모습과 분위기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에서 브람스의 곡을 들으며 밥을 먹게 되었다. 젊은 날에 들어보고는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브람스의 선율은 밥을 먹고 있는 필자를 감격하게 하였다. 그 때 나는 아래와 같은 시를 생각하여 곧 이것을 써 보았다.

시월의 가을 하늘이

창 밖의 숲 속에

햇살로 내리는 날입니다.

오랜만에

브람스의 선율에

가을이 쌓이고 있습니다.

풍경처럼

아름다운 사람들과

즐거운 식사를 합니다.

밥알 속에

브람스의 콩나물이

솟고 있습니다.

-<브람스의 콩나물> 전문

시월의 가을 숲 속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풍경과 집안 가득히 흐르고 있는 브람스의 선율이 밥알 속에 콩나물의 상징인 음표가 솟고 있는 것으로 환상에 젖을 수 있었다. 음악과 음표와 콩나물과 낙엽 쌓이는 가을에 젖기 전에 사람에 젖으며 그 순간의 공간에 빠져들 때 우리는 자기 생애의 귀중한 시간과 공간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김춘수의 '꽃'에서 몸짓에 지나지 않던 사물이 나에게 와서 꽃이 될 수 있었음은 의미부여의 최고최선이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생애의 잊을 수 없는 그 순간과 그 사람들을 재생하고 재현한다.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그 많은 장면 속에서나 같은 순간을 영원 절대 세계로 확대하는 것이다.

시의 경우, 주제는 형상화된 정서 속에 용해되어 있는가 하면 소설의 경우 그것은 플롯을 통한 스토리 속에 잠재해 있는데 비하여 수필의 그것은 육성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 많다. 그 주제를 일상 생활에서 찾거나 자연과 인간사의 달관에서 구했거나 간에 그것을 관조하며 사색하고 비판하여 견해를 밝히는 글이기에 다른 어떤 장르보다 그 주제가 표면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다. 때문에 독자에 대한 호소력도 대단한 것이다.

전공이 평론이면서도 나는 자주 일렁이는 감정의 파장이나 생각의 놓여나기를 여고 시절에 좋아하던 시문학적 표현을 원용하고 있다. 그 표현의 방법이 수필과 같은 직접적이며 정면으로 들어가는 세상과 인간에의 느낌이고 그 그리움이나 외로움의 정직한 발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의 개울로도 다 풀리지 못하는 세상과 사람의 가닥풀기와 날카로운 비판과 둘러진 끈은 서사 구조인 수필문학으로 이룰 수밖에 없다. 때문에 수필 소재의 다양함은 경험 축척의 풍요로움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행을 떠나면서 그리고 여행 중에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면서, 혹은 그들과 화합이거나 갈등이 일 때에도 그 느낌과 소감을 적어 두었고 신문 구석의 작은 뉴스의 인물이나 초점도 스크랩해 두고 그것을 분류하여 글을 쓸 때 활용해 왔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베스트셀러나 읽은 책의 요지와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두었다가 적절한 테마 속에 인용하여 다시금 그 날의 감격을 모두의 공감대로 확산시키는 일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갔다.

최근에 대유행을 하고 있는 페미니즘적인 칼럼을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이 밀리면서 필자는 여성학 관련 저서 등을 읽으며 발췌해 두었던 동서고금의 많은 여성학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나의 주관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 여성의 정치 참여라는 욕구가 증대되면서 여성계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차고 있다. 필자는 지난 94년 4월에 있었던 이탈리아의 최연소 하원 의장으로 당선된 이레네 피베티(31세)에 관한 스크랩을 활용하고 있다.

스스로도 '타협하지 않는 가톨릭 신도'라고 밝혀온 강경파인 그녀는 94년 4월 16일 이탈리아 하원의장 선거에서 4차 투표까지 벌이는 고전 끝에 6백30개 의석 중 3백 47표를 얻어 당선이 확정되자 동료 의원들이 선사한 축하의 장미꽃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렸다는 감격적인 내용은 한국 정치계의 여성 지망생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볍게 스쳐갈 수도 있는 이와 같은 내용도 열심히 종류대로 스크랩화함으로써 관심 분야의 내용에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저력이 된다.

현대를 일컬어 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는 정보는 자신이 발굴해서 그것을 용도대로 분류하여 활용할 때 그 가치가 살아나는 것이다.

나의 이와 같은 습관은 신문이나 잡지, 책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학 구내의 게시판이나 대학의 화장실 벽의 낙서판에 이르기까지 참신하고 다양한 문장이나 구호를 모아 두었다가 적절한 테마의 수필을 쓸 때에 사용한다.

대학 생활이 조금 지난 새내기의 '탈출선언!'이란 글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학우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얼마만큼의 대학 문화를 누리고 계세요?

수많은 학교 행사, 별 이유 없이 참여하지 않은 적은 없는지요. 저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우리들 자신을 위한 자리인데 왜 모두 다 함께 할 수 없는지 안타까웠습니다.

HOF, 가요방, Rock Cafe 이런 것들이 전부는 아닐 테죠.

여기서 우리는 대학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 서로 부대끼며 마주잡은 손에서, 마주보는 얼굴에서 서로의 정을 느껴 보세요.

진정한 대학 문화는 우리 모두 함께 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참다운 자유를 누리세요.

이젠 '나 하나쯤'이란 생각으로부터 탈출 선언을 할 때입니다.

위의 '탈출선언'은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체 삶을 열어가지는 기명의 세내기의 발언이었다. 필자는 감동으로 이 글을 읽었고 역시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 김경훈 편저인 「한국인 트렌드」가 서점가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때에 각 언론 매체에서도 'X 세대'에 대한 얘기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어느 날 나는 대학 구내에서 다음과 같은 광고를 보았다.

X세대

중요한 건 X가 아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용기와 무책임하게 휩쓸려 가지

않는 자신이 중요하다!

여기 또 다른 선택이 있다.

○○○야학!

○○○-○○○○

한 사람이 아쉽지만 쓸데없는 사람은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라고 하여 야학에서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동료 학생을 구하고 동참을 격려하는 글이었다. 간략한 가운데 강렬한 선택과 다부진 결행이 깃든 글이었다. 나의 취미는 여기에 끝나지 않는다. 참신한 말 한마디에도 감격과 메모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글읽기와 꾸준한 메모 습관, 지칠 줄 모르게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읽고 모으는 습관, 넉넉한 고독 속에서 줄기차게 그리운 사람과 그 공간을 사색하는 재미로움이 내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취미벽이다. 이것이 글이 되어 나의 감격과 나의 지성적 비판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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