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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의 창(Lance of Longinus)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3. 7. 10:53

예수의 피가묻은 기적의 창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호프부르크(Hofburg)박물관에 전시중인 롱기누스의 창


롱기누스의 창(Lance of Longinus)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있을 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롱기누스(Longinus)라는 로마병사가 창으로 예수의 심장을 찔렀으나 빗나가 옆구리를 찔러 피가 흘러나와 예수의 피가 묻은 신성한 창이라고 한다. 롱기누스는 창으로 예수를 찌른 순간 눈이 멀었으나 창에 흐르는 피로 눈을 씻으니 회복되어 그후 예수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 창은 롱기누스집안에서 전해져오다가 그 후손이 로마에서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황제에게 바친다. 그는 이 창이 하느님의 뜻으로 인도해 준다고 믿어서 부적처럼 몸에 지녔다고 한다. 그후 이 창은 칼 대제의 할아버지인 프랑크왕국의 궁재(왕실의 군대와 재정을 총괄하던 직) 칼 마르텔이 소유하게 된다. 그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유럽에 침입한 이슬람의 대군을 732년에 프랑크의 프와티에(Poitiers)평원으로 끌어들인뒤 궁수부대를 매복시켰다가 기습전멸시킴으로써 유럽을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구한다. 그는 항상 전투시에 이창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그후 그의 손자 샤를마뉴 대제(칼 대제)에게 전해졌는데 그는 47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게 되며 그것이 이 창 때문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히 이 창을 떨어뜨린 직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서기 900년 초 이`운명의 창`은 독일 작센(Saxon)왕가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도 이를 지니고 있던 하인리히 1세(919~936)는 작센 왕가의 지배자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그의 아들 오토 대제(AD 955~963)에게 창을 물려주었다. 교황 요한 12세(AD955~963)는 오토 대제에게 세례를 주면서 이 창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토 대제는 이 창을 지니고 `렉 전투`(The Battle of Leck)에서 몽고족을 격파했다. 그 후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바바로사를 비롯 1.000년 동안 45명의 제왕이 이 숙명의 창을 소유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역시 롱기누스의 창에 대한 이야기를 믿었다. 그는 당시 사라진 롱기누스의 창을 찾기 위해 전 유럽을 뒤지고 돌아다녔으나 끝내 찾지는 못했다.

그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학자 발터 슈타인(Walter Steinmeier)으로부터 '이 신성한 창을 소유하는 사람은 이 세계의 통치자가 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호프브르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창에 관심을 갖는다. 그 뒤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1938년 4월 비엔나로 입성한뒤 히틀러는 첫 공식 일정으로 비엔나의 호프부르그 궁전에 도착하여 보물관에 들러 유리 상자속에 모셔진 성스러운 창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번쩍 들고 나왔다. 그 이후 독일군이 전투마다 승리하며 파죽지세로 진군하여 유럽 전역을 거의 석권한다. 히틀러가 죽고 독일이 패전한 뒤에 잠시 미국으로 건너가 있다가 다시 비엔나의 호프부르크 박물관에 반환되어 현재까지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호프브르크 박물관에서 지금 전시하고 있는 창이 진품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자와 고고학자, 그리고 디스커버리 채널이 나서서 이 창의 금속 연대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창이 제작된 정확한 시기를 알아냈는데 결정적으로 이 금속이 만들어진 시기는 대략 7세기 경으로 예수의 몸을 찌른 창은 절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다면 진품은 정말 있었을까?

일본 가쿠엔사의 월간 'MU'에 나온 기사를  칼럼니스트인 최호씨가 번역 및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히틀러가 연합군에 항복하기 직전인 1945년 초. 독일 U보트 한 척이 아르헨티나에서 400km 떨어진 남극의 한 협곡에 정박했다. 이 배엔 히틀러의 특명을 받은 해군 결사대 58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히틀러가 끔찍이 아끼던 성스러운 물건 하나를 비밀리에 싣고와 남극의 얼음 동굴에 숨겼다고 한다. 바로 롱기누스의 창이었다. 이런 이유때문에 호프부르크 박물관에 전시중인 창을 히틀러 추종자들은 진품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1974년 '성창 기사단'이란 모임이 독일 뮌헨에서 비밀리 열렸다고 한다. 이들은 남극에 숨겨져있는 롱기누스의 창을 회수하기 위한 별동대를 조직했다. '미션 앤타티카(남극 작전)'라는 암호명이었고, 히틀러 맹신자였던 하르트만을 단장으로 4명의 결사대가 조직됐다.  이들은 뮌헨을 출발해 마드리드를 거쳐 상 파울로로 날아가 그곳에서 수륙양용 비행정을 타고 남극 호프만 산맥 협곡 동굴에 도착했다. 멀고 험난한 길이었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었을까. 남극 동굴속 강철문이 35년만에 열리면서 빨간 가죽 손잡이가 달린 청동색 창이 신비한 옛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진품' 역시 행방이 묘연하다. 전시중인 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히틀러가 정말 남극에 숨겼는지, 그 숨긴 창을 찾았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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