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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난 다이아몬드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5. 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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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소설속에는 많은 거대한 다이아몬드 이야기가 나온다.
불교 전설에는 원둘레가 100피트 되는 다이아몬드 하나로 만들어진 옥좌가 나오며
미국의 소설가인 피츠제랄드는 리츠 호텔 만큼이나 큰 다이아몬드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여태까지 발견된 가장 큰 다이아몬드는 겨우 주먹만한 크기이다.
1905년 1월 25일 프리미어 광산에서 금무하던 근로자들이 그 날 작업을 끝마쳤을 때
광산 감독관인 프레드릭 웰즈는 마지막 작업 순시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근로자 한 명이 그에게로 뛰어와 앞뒤가 맞지 않게 떠듬거리면서 뭐라고
말을 하였다. 그는 웰즈씨를 데리고 구멍 끝으로 가서 손으로 가르켰다.
구멍 벽면에 박혀 있던 무엇인가가 지는 저녁 노을 속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웰즈씨는 아마도 그것이 유리조각 일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던졌다.
(광원 근로자들이 그와 같은 농담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곧 그는 구멍으로 들어가 그 물질을 파내었다.
그것은 역사상 가장 큰 보석용 다이아몬드로 드러났다.
그 원석은 2 x 21/2 x 4 인치이며 약 1 1/3파운드 상형이 나갔고 거의 흠이 없었다.
그것의 중량은 무려 3106.75캐럿이나 되었다.
그것은 프레미어 광산의 설립자이며 바로 그 날 그곳을 방문했던 토마스 컬리난경의
이름을 따서 "컬리난"이라 명명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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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바알 다이아몬드 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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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발의 수상이었던 루이스 보사는 그의 정부를 설득하여 약 일백만 달러에 그 돌을 구입하였으며 트랜스발의 헌법을 승인해준 감사의 표시로 그것을 영국의 에드워드 7세에게 선사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연마하는 중대한 작업을 위해 에드워드 7세는 995캐럿 엑셀시어 (컬리난이 발견되기전 역사상 가장 큰 원석 다이아몬드로 기록이 되었던)를 컷트했던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애셔가를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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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셔가의 전문가들은 몇 달을 그 결정을 연구하고 작업을 계획하고 설비기구를 준비하고 연장과 기구를 알맞게 고쳐 유리와 왁스 모델로 실험하는데 보냈다.
1908년 2월 10일 오후 2시 45분 조셉 애셔는 그 거대한 다이아몬드에 낸 0.5인치 홈에 특별히 만든 강철 칼날을 대었다. 그리고 강철봉으로 칼날을 세게 쳤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셔는 다시 한번 세게 쳤다. 그러자 그 다이아몬드는 계획한대로 벽개되었다.(그 때 그는 실신했다는 소문이 전한다. 어떤 소문은 그가 2주간이나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애셔 가문의 한 사람은 "애셔 가문 사람중 어느 누구도 다이아몬드 작업중 기절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컬리난은 9개의 큰 보석과 96개의 좀 더 작은 돌 그리고 19.5캐럿의 연마가 안 된 돌들로 나누어졌다. 그 중 가장 큰 2개의 보석은 영국의 왕보로 보관이 되었다. 나머지는 애셔에 수고의 댓가로 지불되었다.
에드워드왕은 그의 부인인 알렉산드라왕비를 위해 2개의 큰 보석중 하나를 수입했다. 트랜스발 정 부도 남은 돌들을 사서 나머지 6개 보석을 메리 여왕(영국의 다음왕인 조지 5세의 왕비) 에게 1910년 선사했다.
더 작은 돌중 2개는 루이스 보사에게 선사되었는데 그는 그 중 하나를 그의 딸이 17세가 되었을 때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작은 돌들은 아무도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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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난 1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로서 "아프리카의 거대한 별(Great Star of Africa)"로 명명되기도 한다.
530.20캐럿의 페어(Pear: 물방울)형태로 74개의 면으로 연마되어 있으며, 영국여왕의 대관식때 사용되는 여왕봉에 세팅되어 있다. 대관식용의 왕실 보물 중 하나로, 현재 런던 탑안에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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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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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2번째로 큰 다이아몬드로 317.40캐럿의 66개 면을 가진 쿠션(Cushion: 4모서리가 둥그런 직사각) 형태로 연마되어 임페리얼 스테이브 크라운(Imperal State Crown: 영국 여왕의 왕관)에 세팅되어 있다. 현재 컬리난 1과 함께 런던탑에 왕실 보물중 하나로서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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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가 컬리난3 위가 컬리난4

컬리난 3
페어(Pear:물방울)형태로 94.40캐럿이며, 기본적으로 퀸.메리 왕관(Queen Mary Crown)의 제일 상부에 세팅되어 있으나, 분리하여 컬리난 4와 함께 펜던트, 브로치로서 착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메리여왕의 초상화에서 동 여왕이 컬리난 3과 컬리난 4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동일하게 이것을 이용하고 있다.

컬리난 4
63.60캐럿의 쿠션(Cushion: 4모서리가 둥그스런 정사각)형태로 연마되어 있으며
퀸.메리왕관의 머리띠 부근의 전면에 세팅되어 있으나 분리하여 컬리난3와 함께
펜던트용으로 이용되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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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모양의 컬리난5

컬리난 5
18.80캐럿의 하트(Heart)형태로, 초기에는 유명한 코히누르다이아몬드(Kohinoor Diamond)와 서로 교체하여 퀸.메리 왕관의 이마 장식부에 장식할 수 있도록 메리 여왕을 위한 브로치에 세팅되어 있었으나 1937년에 코히누르 다이아몬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황태후를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왕관으로 옮겨졌다...

컬리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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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캐럿의 마키즈(Marquise: 보트)형태로 초기에 에드워드 왕이 왕비인
알렉산드라 여왕에게 선물하여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의 넥클리스로서 이용되고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현재의 여왕에 의해 가장 많이 착용되고 있다.

컬리난 7
8.80캐럿의 마키즈 형태로 전체가 작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브로치의 맨 하단에
세팅되어 있으며, 그 부로치의 중심에는 6.80캐럿의 사각형으로 연마된 컬리난 8이
같이 세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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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이 컬리난7 위쪽이 컬리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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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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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난8

 










컬리난 9
4.39캐럿의 페어 형태로 메리 여왕을 위해 만들어진 반지에 세팅되어 있으며 이것도 현재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

출처- http://goino.zott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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