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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해야하는 이유2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6. 30. 12:52

인생은 커다란 음모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생의 성공을 위해 코피 쏟으며 악착같이 공부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중학교 때나 혹은 고등학교 때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있습니까?

대입을 눈앞에 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봅시다.

열등생 : 저는 전문대 입학도 어려운 열등생입니다. 제가 왜 공부를 남들보다 못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이 학교 가라니까 다녔고, 친구들이 놀자고 할 때 놀았고, 하기 싫은 숙제는 안 했고, 무서운 선생님이 내 준 숙제는 마지못해 하였습니다. 때로는 학교에 가서 친구의 숙제를 보고 베끼기도 하였구요. 다른 아이들도 다 그런 식으로 하는데 제가 특별히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평범하게 산 것뿐인데 왜 대학은 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우등생 : 저는 일류 대학 입학이 목표인 우등생입니다. 공부가 썩 재미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시키는 대로 숙제 열심히 하고 학원 다니래서 다녔습니다. 어느 날 수학 시험 잘 봤더니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사실 저의 실력 때문이기보다는 전날 학원에서 풀이한 문제가 많이 출제된 덕분이었습니다. 아무튼 칭찬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학교 공부 자체가 즐거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수학, 과학과 같은 과목은 딱딱하고 재미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시험이 다가오면 최소한 벼락치기 공부는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어느 정도 성적 유지는 되더군요. 그런데 솔직히 S대, Y대, K대 등 일류 대학 입학은 자신이 없습니다. 반에서 3∼4등은 하는데 더 이상은 벽을 넘기가 영 힘에 부칩니다."

우등생과 열등생. 그들은 자기들이 왜 그런 위치에 있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우등생과 열등생. 그것은 분명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작은 요인들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판이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열등생의 경우, 대학은 누구나 쉽게 가는 줄로 알았는데, 대학을 못 가면 그냥 사업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런 가능성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좌절감을 겪게 됩니다. 왜 몰랐을까? 왜 공부를 열심히 못했을까? 후회를 하여도 이미 지난 일입니다. 왜 우리 부모는 나를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지 않았을까? 원망을 해 봐도 소용없습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빚어낸 산물이며,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낳습니다. 여기에 인생의 음모가 숨어 있습니다. 항상 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자칫 실패하는 길로 들어서기 쉽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은 유치원 때의 경험을 토대로, 은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면서, 은 또 그 이전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18세 청소년이 그동안 살아온 18년과 앞으로 살아갈 18년이 꼭 같을까요? 아니죠. 자신이 경험한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은 전혀 다릅니다. 학생 신분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는 것은 또 한번의 탄생과 같습니다. 직업을 가져야 하고, 연애도 해야 하고, 국방의 의무도 이행해야 하고, 결혼도 해서 애도 낳아 길러야 하는 등 넘어야할 산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래를 설계할 때에는 자신의 과거 경험보다 인생 선배의 조언이나 충고가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모여 앉아 바깥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론을 해 봅니다만 우물 밖으로 나간 선배 개구리가 바깥 세상에 대해 더 잘 압니다.

"야∼아, 우물 밖은 험난해. 햇빛도 뜨겁고 뱀도 많고 살기가 영 쉽지 않아. 우물 안의 개구리들아, 그러니까 알아서 잘 준비하고 나와!"

우물 밖 개구리의 외침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지금 아무 일 없다고 마냥 그럴 것으로 생각하여 그저 희희낙락 휘파람만 불다가는 장차 큰 시련을 겪습니다. 공부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학생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세상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놀고 싶을 때는 놀아야 한다. 방구석에 처박혀 공부만 하는 우등생이 되고 싶지는 않다. 좀팽이로 사느니 한량으로 즐기련다. 으아, 거리가 나를 부른다!"

글을 쓰는 저도 감상파 내지 낭만파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수업 시간만큼은 집중해서 공부하는 학생이었지만, 방과 후에는 당시 학교에서 출입을 금지하던 영화관, 음악감상실, 전자오락실 등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1981년 신촌지구 전자오락대회 우승). 만화를 좋아하고 무협지도 열심히 읽었으며, 여학생들과 빵집에서 미팅도 했습니다. 그런 저의 눈에는, 책 이외의 다른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공부만 하는 친구들이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고등학교 동창들 중 80명이 서울대학교에 합격하였는데, 그들 대부분은 멋 낼 줄도 모르고 취미 생활은 더구나 할 줄 모르는 친구들이었습니다. 학교와 공부에 대한 것말고는 그 친구들과 함께 나눌 이야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게다가 공부하느라고 찌든 모습이 꾀죄죄하여 쳐다만 봐도 답답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동창회에서 만난 그들은 그 옛날의 좀팽이가 아니었습니다. 당당한 멋쟁이 신사가 되어 있었고, 호탕한 웃음 속에는 여유가 넘쳐흘렀습니다.

한편, 그 때 그 시절 몰려다니며 놀기 좋아하던 친구들은 동창회 모임에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몇 명의 놀던(?) 친구들은 한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그들의 자리를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멋진 애인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해변 도로를 질주하고 싶은 욕망이 크면 클수록 공부에 전념해야 합니다. 크고 아름다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뿌린 씨를 잘 갈무리하고 줄기와 가지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때 이르게 핀 꽃은 크기도 작고 일찍 시드는 법입니다.

공부의 중요성을 느끼십시오. 학생 여러분의 체험으로만 미래를 재단하는 우를 범하여 음모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인생의 선배로서 충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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