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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금광을 가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6. 27. 22:06
 



일정 품위 이상의 광석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금이다.


금광의 업무는 조별 8시간씩 하루 16시간을 2교대로 진행된다. 3교대로 24시간을 가동해야 효율이 극대화 되지만 아직 그럴 여건은 아니다.  
그래서 16시간동안 한시도 작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업무 조정을 한다.  만약 발파에서 채굴까지 시간이 지연되거나 작업조의 교대가 원할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계설비를 엄청난 전기료를 물고 놀리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잠시 멈추는 것은 손실이 더 크다. 재가동시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시간은 일정시간 이상을 놀리는 것보다 비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품위'가 낮다고 '품격'있는 황금이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금광석(이하 광석)의 질은 금함유량에 달려 있다.  광업용어로 광석의 질을 '품위'라고 한다. 하지만 품위는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당시의 경제성에 따라 품위의 높고 낮음을 이야기한다. 1톤의 광석에서 최소 15그램 이상의 순금을 얻어 낼 수 있어야 경제성을 지닌다고 한다. 그 정도 되면 '품위가 있다'고 부를 수 있다.  그 이하 낮은 품위의 광석에서는 정련비도 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캐내는 톤당 함유량 8~9그램의 광석을 못 쓰는 것은 아니다.  계속되는 지질 탐사와 갱도의 확장으로 품위가 높은 원석이 발견되면 그것들도 금으로 변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  금 함유량 20그램 정도의 광석만 발견되면 그 자체로는 쓸모없던 광석들이 그들과 섞여서 당당히 황금으로 변신할 수 있다.
일제 시대 때 그 주변 금광에서 캐낸 원석의 평균 금 함유량이 톤당 150그램정도 였다고 하니 20그램 품위의 금맥 발견은 이들에겐 어쩌면 최하의 기대치 일지도 모른다.


광부들이 캔 원석의 금 함유량 측정은 금광 자체 분석실에서 매일 이루어진다.

"금광에서 원석을 캐내는 것 보다 중요한 게 분석하는 걸 겁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분석하는게 우리 분석관들에겐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비철금속 광산계에서 머리털이 셌다는 분석실장의 자부심은 자신이 젊었을 때 다루었다는 텅스텐만큼 단단해 보인다.
   7,80년대 우리가 배운 지리교과서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텅스텐 생산국으로 기재되어 있다.  분석실장은 그 시절을 잠시 회고했다.  
제법 큰 광산의 분석실에는 2~30여명의 분석관들이 일을 할 정도였고, 자신이 일했던 곳은 70여명이 분석일에만 매달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기 탤런트 아무개 아버지와 함께 근무한 이야기며,  에탄올을 소주처럼 마셨고 그러고도 정확하게 분석해내던 솜씨 자랑을 늘어 놓으시더니 대뜸 중국에 화살을 날린다.


"우리나라 텅스텐 생산비가 50달러 할 때 중국이 판매가를 50달러로 내려놓으니깐 광산들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다 닫아 버렸지요."

수출 가격 덤핑 후 공급 독점을 노린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상당수 텅스텐 예비 전략을 의존할 정도의 세계 최대 텅스텐 생산국이기 그런 전략이 가능했다.  그 후 우리나라 텅스텐 매장량의 80%를 차지하던 강원도 상동 광산은 1992년 휴광을 하였고, 1975년 2만 2천여명이던 상동읍의 인구는 1997년 2000여명으로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읍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못가 텅스텐 원자재 값은 500달러로 폭등했던 것이다.  분석실장도 그 후 광산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전전  했고,  얼마 전 이 금광으로 스카우트 되어 왔다.

"지금은 다시 광산 문을 열거나 개발하려고 해도 예전의 노련한 광부와 분석가들을 찾을 수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 요즘의 원자재값 파동은 중국 내부의 원자재 소비가 급등했기 때문이므로 다시 광산 문을 연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기술과 기계가 발전하고 젊은 인력이 모여들어도 사라진 과거의 경험치를 쉽게 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분석실장 옆에 있는 젊은 광부는 이제 갓 분석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기에 얼마나 되었냐고 물었더니 '이제 하루되었습니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 많던 노다지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나마 텅스텐은 한국 수출품의 80%를 차지했던 영광의 역사라도 가지고 있다.
  문헌에 따르면 해방 이전 일본은 수년간 우리나라에서 매년 순금 50톤, 금광석 50톤 가량을 가져 간 것으로 기록될 정도로 금광은 식민지 조국 수탈의 상처가 깊게 패인곳이다. 그리고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불과 5년전까지 전남의 한 금광은 캐나다의 자본으로 개발되었다.  우리의 기술진들은 금맥이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내렸고 탐사개발권을 캐나다측에 넘긴 것이다.  수탈이 수치로 바뀌어 버렸다. 품위 높은 금맥을 찾아낸 캐나다 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어갔고 개발권이 만료되어 우리에게 금광이 넘어왔을 때는 이미 부스러기만 남은 상태였다고 한다.
해방전에는 일제에 수탈당하고 해방 후에는 토착자본이 매판자본으로 변질되거나 외국 자본에 흡수되어 금광개발의 이익을 얻지 못했던 이 땅의 광산이야기를 듣다보니 장기밀매단에 생때같던 신장떼주고 돈도 못받은 사람이 떠오른다.

이제는 노다지가 나올 차례다!


  금광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소장은 망치로 두드려 광맥을 찾는 신기한 능력을 지녔다.  금맥은 검회색 바위사이에 흰색 단층으로 드러난다.  그 안에 흩뿌린듯 박힌 노란 것들이 금이다.  톤당 300그램 품위의 광석에서는 흩뿌린듯 보이는 게 아니라 덩어리채로 뭉쳐 있다고 한다.  이것이 노다지다.
일제 시대 때는 산 전체가 노다지였다는 말도 있고, 캐나다인들이 파먹은 광산도 곳곳이 노다지였다고 하는데 약간은 과장된 것 같다. 하지만 현장소장의 존재와 노다지의 전설은 광산에 일하는 모든 이들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바깥에서는 광업 진흥 공사에서 인력과 장비를 모두 지원하는 과학적 탐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노다지에 대한 기대는 한 껏 부풀고 있다.  
글, 사진 이윤환 [2005.11.28]


 


:: 편집후기

글을 쓰는 도중에 일본 외상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문제삼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과 중국뿐이라며 신경 쓸 필요없다고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더욱이 “일본이 고립돼 있다거나 호감을 받지 못한다는 등의 아무 상관없는 일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까지 했다는데, 세련된 원시사회 일본의 외상은 외상장부 두꺼운 순으로 뽑는 게 분명하다.
자기네 국민들에게도 빚만 잔뜩 지고 도망다닐 것 같은 인간이다. 열받는데 품위 제로 광석이나 잔뜩 먹여줄까 보다. 아니면 품위 높은 걸 구해다 먹여줄까?  그러면 인간 품위가 높아지려나...?

금광은 보안이 철저했다. 보안을 걱정한 광산 관계자의 요청으로 광산의 위치와 명칭을 글에 넣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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