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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카 다이아몬드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5. 2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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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첫번째 다이아몬드인 유리카는 그것의 크기로 볼 때
그리 특이할만한 것이 못되지만 그 역사적인 충격은 주목할 만하다.
그 돌의 이름은 "나 를 찾아냈다" 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케이프 콜로니의 호웁 타운 지역에 있는 오렌지강 근처의 한 농장에서
시작된다.
1866년 에라스무스 야곱과 클론키라는 이름 의 한 호텐토트 출신 양치기가 나무를
베러 나갔다. 가는 도중 클론키는 에라스무스에게 반짝이는 조약돌 하나를 던져 주었는데 에라스무스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가져와 누이 동생에게 가지고 놀라고 주었다.
얼마 후 셔크 반 니에커크가 야곱가의 농장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부인은 그 반짝이는 돌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긁을 만큼
단단하다는 말을 들은 반 니에커크는 유리창에 실제로 실험을 해 보았다.
분명 그 돌이 유리창에 자국을 내었다. 반 니에커크는 그 돌이 다이아몬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그는 호웁 타운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을 때
그것을 무역상들에게 보여 주었다.
비록 그들은 그 돌이 다이아몬드일 것이라는데 대해서 많은 회의를 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증명할 만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햇다.
그들은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콜즈버그로 가져가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였다.
반 니에커크는 그의 농장으로 돌아와 그것을 그의 부인에게 맡겨 두었고 그녀는
바느질 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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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3월 반 니에커크는 그것을 존 오라일리라는 이름의 사냥꾼에게 보였는데
그는 자진해서 그 돌을 콜즈버그로 가지고 갔다. 콜즈버그에 도착한 오라일리는
그것을 시의원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레함스타운에 있는 다른 지질 학자에게 보내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래서 오라일리는 그것을 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보냈다.
시험과 토의를 거친 후 지질학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그 보 석을 나에게 보내 준 데 대해 당신에게 축하를 보내야 겠군요. 그것은 21.25캐럿 무게의 500파운드의 가치가 있는 다이아몬드입니다.
이 다이아몬드가 나온 곳에는 틀림 없이 더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가 있을 것입니다 ."

케이프 콜로니 총독은 그 보석을 사서 런던으로 보냈으며 거기서 그 돌은 다이아몬드임을 확인받게 되었다.
그 원석은 1867년 파리 박람회에 전시되었고 그 이후 곧 10.73캐럿의 오벌 브릴리언트로 컷트되었다. 그 후 보석은 1966년까지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드비어스사가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1967년 그것이 발견된 100주년이 되던 해에 유리카는 지금 전시가 되고 있는
케이프타운 의회에 기증되었다

출처- http://goino.zott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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