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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카 다이아몬드 본문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첫번째 다이아몬드인 유리카는 그것의 크기로 볼 때 그리 특이할만한 것이 못되지만 그 역사적인 충격은 주목할 만하다. 그 돌의 이름은 "나 를 찾아냈다" 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케이프 콜로니의 호웁 타운 지역에 있는 오렌지강 근처의 한 농장에서 시작된다. 1866년 에라스무스 야곱과 클론키라는 이름 의 한 호텐토트 출신 양치기가 나무를 베러 나갔다. 가는 도중 클론키는 에라스무스에게 반짝이는 조약돌 하나를 던져 주었는데 에라스무스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가져와 누이 동생에게 가지고 놀라고 주었다. 얼마 후 셔크 반 니에커크가 야곱가의 농장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부인은 그 반짝이는 돌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다이아몬드는 유리를 긁을 만큼 단단하다는 말을 들은 반 니에커크는 유리창에 실제로 실험을 해 보았다. 분명 그 돌이 유리창에 자국을 내었다. 반 니에커크는 그 돌이 다이아몬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그는 호웁 타운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을 때 그것을 무역상들에게 보여 주었다. 비록 그들은 그 돌이 다이아몬드일 것이라는데 대해서 많은 회의를 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증명할 만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지 못햇다. 그들은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콜즈버그로 가져가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였다. 반 니에커크는 그의 농장으로 돌아와 그것을 그의 부인에게 맡겨 두었고 그녀는 바느질 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1867년 3월 반 니에커크는 그것을 존 오라일리라는 이름의 사냥꾼에게 보였는데 그는 자진해서 그 돌을 콜즈버그로 가지고 갔다. 콜즈버그에 도착한 오라일리는 그것을 시의원에게 보여주었는데 그레함스타운에 있는 다른 지질 학자에게 보내자고 제안을 하였다. 그래서 오라일리는 그것을 봉투에 넣어 우편으로 보냈다. 시험과 토의를 거친 후 지질학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그 보 석을 나에게 보내 준 데 대해 당신에게 축하를 보내야 겠군요. 그것은 21.25캐럿 무게의 500파운드의 가치가 있는 다이아몬드입니다. 이 다이아몬드가 나온 곳에는 틀림 없이 더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가 있을 것입니다 ." 케이프 콜로니 총독은 그 보석을 사서 런던으로 보냈으며 거기서 그 돌은 다이아몬드임을 확인받게 되었다. 그 원석은 1867년 파리 박람회에 전시되었고 그 이후 곧 10.73캐럿의 오벌 브릴리언트로 컷트되었다. 그 후 보석은 1966년까지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드비어스사가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1967년 그것이 발견된 100주년이 되던 해에 유리카는 지금 전시가 되고 있는 케이프타운 의회에 기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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