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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와 말라카 해협은 해적들의 천국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25. 23:08
6개월 전 소말리아 모가디슈 인근 해상에서 해적에게 납치됐던 마부노1·2호가 마침내 모국(母國) 땅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중국인·베트남인·인도인 등 다른 20명과 함께 잡혔다 풀려난 한국인 피랍자 4명은 ‘해적’이란 말만 나와도 치를 떨었다. 그만큼 소말리아 해적은 잔인하고 집요했다. 국적(國籍)을 불문하고 배를 납치했고, 석방 협상 내내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철 모르는 10대 어린이까지 총을 들고 아버지뻘인 피랍자들을 괴롭혔다.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종족입니다. 사람도 아닙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끝에 풀려난 마부노1·2호의 한석호(40) 선장. ‘자유의 몸’이 됐다는 기쁨도 잠시인 듯, 해적 얘기가 나오자마자 격한 감정을 분출했다. 그는 석방 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놈들은 피랍자를 죽여놓고도 ‘무사히 살아 있다’며 돈을 요구하고도 남을 것”이라며 “정말 사람도 아니다. 지구에서 사라져야 할 종족”이라고 분개했다.
▲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납치됐다 174일만에 풀려난 원양어선 마부노1.2호의 처참한 모습 photo 조선일보 DB

10대 소년까지 총들고 해적질
한 선장이 전한 반년간의 경험은 지금껏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던 소말리아 해적의 ‘실체’를 비교적 자세히 그려볼 수 있게 해 준다. 한국 선원들은 10월 말 무장된 군용트럭에 태워져 해안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소말리아 북동부의 사막 마을 하라데레로 보내진 뒤, 나흘간 이곳에 머물렀다.

그는 “하라데레에 있는 해적 본부엔 300가구 정도 되는 집들이 있는데, 마을 전체가 해적 소굴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300여명의 주민은 하나같이 해적 패거리였다. 10살이 갓 넘어 보이는 앳된 소년까지 총을 잡고 해적질에 가담했다. 마부노1·2호를 감시하면서 선원들을 폭행하고 총으로 위협한 해적 중 한 명도 10대 소년이었다고 한다. 한씨는 “어른 해적보다도 멋모르고 총질을 해대는 그런 어린애들이 더 무서웠다”고 했다.

해적들은 소총 같은 개인화기는 물론 대공 발칸포나 군용 트럭 등 웬만한 국가 정규군에 맞먹는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중 이른바 ‘군사 고문’이란 자는 자신이 전직 군인이라고 했다.

해적들은 마부노1·2호의 선주(船主)가 한국인임을 확인한 뒤, 본격적으로 몸값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초기엔 협상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였지만, 일이 잘 안 풀리자 8월 말부터 한국인 선원 4명만 골라 집중적으로 무차별 구타를 시작했다. 산소용접기의 호스를 1m정도 길이로 잘라 두 가닥을 만든 뒤, 머리와 가슴을 가리지 않고 때렸다.
한 선장은 “이들 해적 무리는 작년에 동원호를 납치했던 자들과 같은 무리”라고 했다. 마부노1·2호 납치 당시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그렛’이라는 자는 배 이름인 ‘동원호’와 선장 이름 ‘최성식’을 똑똑히 기억해 피랍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렛’ 세력은 “동원호를 석방하면서 받은 몸값으로 집 4채를 짓고 무기를 구입했으며, 부하도 300명 정도 늘렸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동원호로 집 사고 부하 늘렸다” 자랑
하라데레엔 해적 6~7개 그룹이 있는데, 특히 마부노호를 납치한 해적이 가장 ‘악질’이었다. 한 선장은 “동원호를 납치해본 경험이 있는 자들인지라, 어떻게 고통을 주면 한국인에게서 돈을 받아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며 “때려 패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먹을 것을 안 주고 사막을 돌아다닌다든지, 관자놀이에 총을 대고 노리쇠를 장전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괴롭혔다”고 말했다.

해적들은 탐욕(貪欲)도 대단했다. 배 안에 있던 노트북과 휴대전화는 물론 신발과 양말, 속옷까지 쓸어갔다. 마부노1·2호를 놓아 주던 지난 11월 4일, 배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침실 등에 있던 TV와 DVD 플레이어, 이불 등 쓸 만한 것은 모조리 쓸어갈 만큼 독종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해적은 해적’이었던 셈이다.

해적들은 미리 외국 선박의 항해 경로와 일정을 파악하는 등 정보력이 상당했다. 마부노호의 경우, 납치를 위해 하루 반 전부터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새벽에 급습했다. 또 한 번은 해적이 “내일 배를 잡으러 간다”면서 이튿날 아침 출발하더니, 그날 저녁 바로 외국 선박 1척을 끌고 왔다고 한다. 그 결과 마부노호뿐 아니라 일본, 대만, 덴마크, 브라질, 이탈리아 , 인도 등 ‘다국적’ 배들이 한동안 함께 붙잡혀 있는 신세가 됐다.
선원들은 “소말리아 정부로부터 외국 배들의 출항정보가 해적들에게 새고 있다” “해적들이 무기나 정보를 소말리아 정부에서 얻는다”고 추측했다. 해적들은 자신들끼리의 대화 도중 “정부도 돈을 20만달러씩 주고 나면 남는 게 뭐가 있냐”며 흥분하는 등 사실상 ‘대(對)정부 상납’까지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말리아 과도정부는 이들을 일종의 ‘지역 민병대’로 임명하고 돌봐준다는 분석도 있다.

▲ 2005년 11월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 근본주의세력 이슬람법정군벌(UIC)이 해적 8명을 체포해 일반에 신원을 공개하고 있는 모습 photo 조선일보 DB

몸값 빨리 주는 한국·일본 선원은 ‘봉’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 인근 해역은 세계적인 해적 출몰지로 악명 높은 ‘가장 위험한 바다’로 꼽힌다. 국제해사국(IMB)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동안 선박에 대한 해적들의 공격은 14%나 증가했다. 특히 소말리아 해역에선 지난 10월 15일 이후 2주 동안 선박 3척이 해적에게 납치되는 등 외국 선박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만 올해 9월까지 모두 26건의 해적 사건이 발생, 지난해 같은 기간의 8건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소말리아 해역은 수에즈운하를 오가는 상선과 아라비아해를 빠져 나온 유조선이 붐비는 해상교통 요지. 4~6월에 날씨가 좋고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서 작은 배를 탄 해적들도 공해까지 출몰한다고 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 선원이 ‘봉’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인질의 몸값을 비교적 빠르게 지불하기 때문이다.

소말리아는 해안선이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긴 3300㎞나 돼서 해적들이 돌아다니기에 좋다. 2005년 6월 소말리아 주민을 위한 유엔의 구호식량을 실은 선박이 해적에 나포됐다가 100여일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인과 유럽인 관광객을 태운 호화 유람선 시본 스피릿호가 로켓추진수류탄으로 무장한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다가 가까스로 해적선을 뿌리쳤다.


일부 군벌 어민을 해적으로 고용
소말리아 인근에서 피랍사태가 빈발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내전으로 인한 공권력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소말리아 내전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뒤 22년간 장기집권해 온 모하메드 사이드 바레에 대해, 역시 군 장성 출신인 무하마드 파라 아이디드가 1991년 반군단체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촉발됐다. 이후 두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이 이어지고 군소 군벌들이 난립하면서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정부는 사실상 수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이를 틈타 해적단체가 소말리아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활개를 쳤다. 2004년 유수프 아흐메드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 역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는 군벌이 지역별 권력을 장악한 채 내전(內戰)을 벌여왔다. 해적들은 이런 혼란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군벌의 비호까지 받아가며 쾌속정과 중화기로 무장한 채 약탈과 납치를 일삼아왔다. 덕분에 소말리아 해적은 처벌 당할 위험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일부 군벌은 아예 일반 어민을 해적으로 고용, 피랍 선원들의 몸값을 벌어들이는 ‘해적 장사’까지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화물선이 곡물, 비료, 시멘트 등을 싣고 소말리아 해안을 드나들고 있다. 위험한 곳일수록 운임비가 비싸기 때문에 ‘고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는 것. 덕분에 소말리아 해적의 ‘먹잇감’도 유지되는 셈이다.


수송료 비싸 선주들 위험 감수
소말리아 이외의 지역도 안전한 게 아니다. IMB에 따르면 전 세계 곳곳에서 신고되는 해적 행위는 매년 300건을 넘나든다. 2004년 329건에서 2005년 276건, 2006년 239건으로 감소했으나 올 들어 9월 말까지 이미 198건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발생한 174건에 비해 14% 증가한 것이다. 해상운송보험료 인상을 우려해 신고하지 않는 사례까지 합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IMB는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사이에 있는 ‘말라카 해협’은 소말리아에 못지않은 ‘해적의 천국’으로 꼽힌다. 해적들이 좋아할 조건을 거의 갖추고 있다. 가장 좁은 곳의 너비가 2.4㎞에 불과하고, 길이는 약 1000㎞에 달한다.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어 큰 배들이 속도를 내기 어렵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매년 평균 5만척 이상의 화물선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중동에서 중국이나 일본으로 향하는 유조선의 80% 이상이 말라카 해협을 지난다.


세관원·해양경비대로 속여 승선하기도
IMB는 2004년 보고된 해적 행위 251건 중 70건이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화물선들이 이 해협을 지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동에서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는 선박이 말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 우회하면 항해로가 약 1600㎞나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선주(船主)들은 해적의 위험에도 불구, 연료비와 선원들의 식량비 등 큰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말라카 해협을 빠져 나와 중국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남중국해도 전통적으로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다. 이로 인해 중국 정부는 유조선이 메콩강의 하류에서 중국 국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안까지 검토했을 정도다. 길이 4000㎞가 넘는 메콩강은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등을 거쳐 남중국해로 흘러든다.
해적이 노략질을 일삼는 행태를 보면, 영화 속에 나오는 ‘풍류를 즐기는 자유인’과는 거리가 멀다. 해적의 상징인 ‘졸리 로저(Jolly Roger·해골 깃발)’를 내걸고 당당히 나타나는 모습은 실제로는 보기 어렵다. 현실 속의 해적들은 어선으로 위장하거나 해양경비대로 가장하는 등 온갖 속임수를 동원한다.


통신 도청하고 좁은 해협서 길목 지켜
2006년 소말리아 해역에서 미 군함과 해적선의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해적들은 “불법조업 어선을 단속한 것”이라고 우겼다고 한다. 때문에 IMB는 상선(商船)들에 “소말리아 해안으로부터 최소 150~200해리(약280~370㎞)는 떨어져서 항해하라”고 조언한다. 또 해적들의 도청을 피하기 위해 소말리아 해안에선 무선통신 사용도 최대한 자제하라고 한다.

나뭇가지에 거미줄을 치고 기다리는 거미처럼, 좁은 해협에서 길목을 지키는 해적들도 있다. 대형 화물선이 좁은 해협, 수심이 얕은 곳, 암초가 많은 지역을 통과할 때는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이때가 바로 소형 쾌속선을 탄 해적들이 상대편 선박에 올라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해적들은 또 큰 배보다는 소형 보트를 선호한다. 해적에게는 ‘기동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해적은 주로 볼보 엔진을 장착한 쾌속정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볼보스’라고도 불린다. 선적된 화물을 노릴 때는 7~10명의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조직원을 태운 소형 쾌속정을 모선(母船)에서 내보내 공격한다. 배 전체를 납치하는 것이 목적일 때는 70여명의 해적이 작전에 참여하기도 한다.

세관원이나 해양경비대로 가장해 손쉽게 승선한 뒤 해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30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근해에서 해적에 납치될 뻔했다가 총격전 끝에 해적을 제압한 북한 선박 ‘대홍단호’의 경우가 그랬다. 북한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배가 모가디슈 항을 출항하려는 순간 소말리아 정부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2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이후 ‘소말리아 경찰’이라며 7명이 승선해 함께 출항했다고 한다.

하지만 10마일(16㎞)쯤 가다가 이들이 갑자기 M-16 자동소총으로 위협하며 선장실을 장악했고, 자신들의 소굴인 하라데레 쪽으로 배를 몰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라데레는 지난 11월 4일 석방된 마부노 1·2호가 해적에게 6개월간 잡혀있던 지역. 이런 정황은 해적들이 자체 정보망을 가동하는 것은 물론, 항구에서부터 관리들과 결탁해 다국적 선적들의 출항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음을 시사한다.


화물 약탈보다 납치한 뒤 몸값 요구가 대세
뇌물을 받은 현지 세관 직원이 해적들의 ‘작업’을 위해 세관원 신분증을 위조해 주기도 한다. 지난 1998년 남중국해를 항해하던 중국 화물선 창성호의 선원 23명은 세관원들이 위조해준 신분증을 내밀고 승선한 해적에게 모두 살해된 뒤 어망에 걸린 시체로 발견되는 비극을 겪었다.

전통적으로 해적은 선박에 실린 화물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마부노 1·2호의 경우처럼 최근엔 선원들을 납치한 뒤 몸값을 요구하는 게 대세가 됐다. 해적들도 ‘현금’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셈이다.
이 밖에 납치한 배를 항구로 몰고 가 빼앗은 뒤, 선체를 다시 색칠하고 서류를 위조하는 과정을 거쳐 되팔아 ‘수익’을 남기기도 한다. ▒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8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선일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withyou@chosun.com 남승우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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